셀러브리티, 법 위에 서다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발행 2020년 04월 08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며칠 전 매우 불쾌한 소식을 접했다. 대형쇼핑몰 임블리에서 패션 디자이너 이다은 씨의 블리다 브랜드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소식이었다. 신인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미술관 전시를 기획해온 나로서는 서글픈 소식이었다.

 

임블리 측에서는 베이직 상품라인 '블리다' 란 상표로 출시하며, 고객 예약주문을 받는 상태였는데, 이후 디자이너가 상표권 침해 문제를 공식거론하자, 하루아침에 온라인에서 블리다 상표를 싹 지웠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인 디자이너 측과 어떤 사전양해나 조율도 없었다.

 

재발방지를 위해, 정식으로 서면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기획팀의 단발성 기획의 실수이자 단순 해프닝”이란 변명이 돌아왔다. 게다가 “내부사정으로 공식 사과문 공지는 어렵다”라고 통보했다. 디자이너는 세 번이나 통화를 시도했고 공식사과를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다.

 

나는 임블리 측 해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베이직 라인을 낸다는 건 한정된 시즌을 노린 단발성 기획일 수가 없다. 이 단어를 쓰는 순간 장기적 상품기획이 필요한 세컨드 라인을 새롭게 확장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임블리 라인의 옷과 상호 연출할 수 있는 상시재고를 갖춘 기본품목(Never out of Stock)에 충실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단발성 기획이란 임블리 측의 해명은 고도의 변명일 뿐이다.

 

차기 브랜드를 출시하며, 네이밍 과정에서 동일음가의 브랜드를 찾아보는 최소의 조사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중견기업인 부건의 규모를 고려할 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임블리는 지금껏 자신의 법무 팀을 이용해 자체 브랜드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방어해왔다.

 

임블리란 이름을 해시태그로 걸거나, 심지어 다른 쇼핑몰에서 연출한 사진이 자신의 포즈와 비슷하다며 내용증명을 보내고 합의금을 요구할 만큼 브랜드 방어를 철두철미하게 해왔다. 이 점은 존경스럽다. 단 역으로 그 철저함을 자신이 관련 법률을 어겼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의 정당성은 양 당사자가 법의 언어가 규정한 땅에 차별 없이 ‘거주' 할 수 있을 때 확보된다. 그 땅은 공동체(Community) 란 이름으로 불린다. 공동체란 공동의 땅(Commune)을 일구는 이들이란 뜻이다. 소형 쇼핑몰을 하건, 신생 디자이너로서 막 꿈을 시작하건, 대형패션기업을 경영하건, 우리 모두 패션이란 땅을 일구는 농부들이다.

 

나는 서글프다. 우리가 만드는 한 벌의 옷, 드레스(Dress)에는 ’법과 질서‘란 뜻이 담겨있건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패션 생태계를 다스릴 법 제정의 속도는 너무 느리다. 온라인 판매와 셀러브리티의 갑질 등을 조율하기 위한 6개의 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입법과정이 지연되며 창작자인 디자이너와 소비자의 피해만 날로 커진다.

 

현대는 셀러브리티의 시대다. 이들은 고대에서 근대까지, 역사 속 ’명성'을 가진 영웅을 대체하는 우리시대의 아이콘이다. 역사에서 명성(Renown)이란 한 인간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이란 뜻이 아니었다. 사회발전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삶의 좌표축을 옮기려고 노력한 이들의 공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패션의 역사는 증명한다. 한 인간의 옷매무새는 사회전체의 미감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고 패션 스타일링은 사회가 가진 개성과 자유의 담론을 발언하는 무대임을. 무엇보다 옷의 제조와 유통, 소비를 책임지는 패션산업은 노동과 젠더, 시대의 이상적인 미, 평등개념에 이르기까지 새 시대의 막을 여는 실험적인 법들의 각축장이었음을 말이다.

 

현대 패션은 온라인과 모바일로 확장된 지 오래다. 새롭게 일궈야할 패션의 땅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패션법안의 제정과 조율에 동참해야 한다. 법 위에 군림하는 셀러브리티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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